내 성격 문제인 거야
남탓하지 마
찌질아
2020년 3월 29일 일요일
2006년 2학기
2020.3.30 월요일
오랜만에 대학을 다니는 꿈을 꿨다.
4시 30분 수업을 마치니 5시 45분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저녁도 먹지 않고 허구의 역까지 걸어 가서 역내의 서점에 들렀다. 나는 서점 구경을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꿈속에서도 나는 조금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06년 2학기는 외국어대 수업만 듣는 것이 싫고 따분하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호텔경영학과와 국어국문학과가 있는 회기 캠퍼스로 두 시간이 걸려 통학을 했다. 두 시간... 기숙사에서 나와서 버스를 타고 강남역까지. 강남역에서 다시 2호선을 타고 왕십리까지. 왕십리역에서 다시 회기역까지... 비지니스일본어 수업이 10시 30분 수업이었고 현대시 수업이 3시였나 4시 30분이었나 그랬다. 2학기라서 12월에 수업을 마치고 정문을 걸어 나오면 하늘이 완전 어둑어둑했다. 그 검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우울했다. 그냥 모든 게 다 우울했다.
그래서 2006년이 끝나고 2007년 입대를 하기 전까지 6개월의 비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어서. 2005년과 2006년은 너무 슬픈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다... 다른 애들이랑 뭐든지 비교하게 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다.
또 복학하기 전인 2009년과 2010년이 마음이 붕 떠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2011년과 2012년에 비해. 2011년과 2012년 그리고 2013년은 너무... 급격히 건강도 나빠지는 바람에... 기억도 하기 싫다. 싫다... 2012년 2학기도 금요일의 3시 교양 수업이 마치면 6시가 되었는데,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가거나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일반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해서 집에 들어가면 7시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또 겨울이다 보니까 하늘이 어두워서 마음도 어두워졌다. 마을 이름도 기억난다. 잔다리 마을... 아무 것도 없던 원룸촌. 원룸촌 뒤에는 무덤이 있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그 동네의 좋은 점은 강남역까지 가는 데에 버스를 타면 20분 컷이라는 점이었다. 강남역까지 가면 뭐해. 돈 없는데.
대학 다니면서 수원역을 10번도 안 가 본 것 같다. 수원역을 가면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내가 버려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낮에 가면 그나마 괜찮은데, 한 두어 번 백화점에 들러서 옷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버스를 타면... 기분이 울창이 되었다. 그리고 수원역은 애경 백화점 빼고 뭐가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에버랜드에서 알바를 할 때도 용인시의 시내를 몇 번 나가 보았는데 또 괜히 기분이 낮아졌다. 그 이유는 용인시가 의외로 개발이 더뎌서 낙후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5002번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나갔지, 용인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강남으로 가면 뭐해. 돈 없는데.
아무튼 오늘 꿈속에서도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머리에 두고 귀가를 하는데... 그때 그 씹창났던 내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내 기억 속에 별처럼 박혔다.
대학 생활 = 생지옥.
친구가 없어서 더 그랬다. 학과 동기나 동아리 선후배들은 있지만 진짜 단짝 친구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정말로 속을 터놓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단 한 명도... 그 많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건 아니고, 나를 이해해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네가 뭔데. 네가 뭐라고 이해까지 받으려고 하는 건데. 참 이기적인 새끼네. (내가 아무리 이기적이어 봤자 서울놈들 만하겠어요?)
그건 그래.
아니. 또 생각하니까 열받네. 1학년 학과 동아리(그냥 새내기 쫌쫌따리들은 반강제로 가입해야 했던 슬픔의 토론 동아리) 4월 MT를 간 날이었다. 나는 성격상 형들보다는 누나들이랑 더 잘 놀았는데 그게 아니꼬운 남자 선배들이 있었다. 동아리장이었던 2학년 누나가 엄청 × 100 예쁜 사람이었는데 이 누나가 또 성격까지 착했다(원래 착한 것도 있는데 이 누나도 1학년 때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대놓고 왕따 당한 전력이 있음. 그래서 본래보다 더 애를 쓴 게 아닐까...). 그런 동아리 회장의 남자 친구가 99학번(화석 아냐?) 형이었는데... 내가 너무 눈꼴셨나 봐. 큰 컵에 소주를 따라서 내게 강제로 먹였고 나는 필름이 끊겨서 기억은 못하지만... 그 형이 나를 패려고 했다는데 다 말렸다고... 99학번이 가오도 없고 뭐냐고... 서울놈들이란. 그 99학번 놈들은 서울에서 잘 사는 축이었다. 대학생인데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도 가지고 있었고. 부모 잘 만나서... 갑자기 확 재수없네.
그 동아리 회장 누나하면 생각나는 건... 보라색을 엄청 좋아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라색으로 꾸미고 온 날이 있었는데 진짜 예뻤다. 그러니까 왕따 당하지(하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왕따시킨 주범인 두 04학번 누나가 진짜 일진은 못되는 2진ㅌㅊ의 날라리였기 때문에... 그 둘 중 재수를 한 84년생 누나는 학과 남자들이랑 이놈 저놈 다 사귀었다. 아니 어떻게 학생회 남자들을 구멍동서로 만들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뒷말을 즐기시는 타입이었나. 웃겨. 공부는 존나 안 하면서 학과 소문은 존나 퍼뜨리는 아가리 타입이기도 하셨다. 남학생이랑 여학생이랑 붙어만 다녀도 별의별 소문을 다 창작했다. 또라이.
이어서, 2005년 12월. 1학년 생활이 저무는 시점에 그 보라색 누나가 1학년이던 나랑 다른 남자애랑 여자애, 이렇게 셋을 데리고 아웃백을 데려 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밥도 먹으면서 이런저런 고민 상담을 나누었다. 그 누나도 애를 쓰신 거겠지... 뭐 예쁘다고 1학년이랑...
1학년 2학기 때 나는 머리를 여러 번 탈색하고 거기다 파마까지 해서 외대에서 나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관종. 그러다 2학년이 되자마자 머리를 차분하게 바꾸었다. 관종 끝. 겨울방학 때 잠깐 2-3주 동안 하늘색 머리였다가 OT때는 금발, 그리고 개강하기 직전에 다시 체리색으로 물들였다. 그런데 보라색 누나의 왕따 주범인 둘 중 85년생인 안경 누나가 너는 금발이 더 잘 어울리던데 하면서 간접 디스를 했다. 자기는 맨날 검은 머리였으면서.
그런데 나도 웃긴 게 학과실에서 맨날 색연필로 알록달록 그림일기를 그렸다. 대학생이... 그래서 여자애들이랑 더 친해졌던 것 같다... 나이값 못해서.
2006년 겨울에 브로크백마운틴이란 영화가 개봉을 했다. 혼자 보러 가기는 좀 뭐해서 친한 동기 중에 있던 쟈니스 오타쿠 여자애랑 보러 갔다. 끝끝내 친해지지는 않더라. 서울애들 성격이 하나같이 지랄맞잖아. 제 실속만 챙기기 바쁘고. 보라색 누나도 성격이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어거지로 학과 동아리 회장직을 떠맡은 스멜. 서울새끼들은 그런 감투를 쓰려고 하지는 않고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고 뒤에서 욕하는 걸 즐긴다. 서울애들이 원래 그래. 깍쟁이들이지.
끝.
2020년 3월 28일 토요일
몬탁 비치
2020.3.28 토요일
0. 왕돈가스
왕돈가스를 먹었다. 이상하게 소화가 더디었다. 윗배가 아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와플을 사 갈까, 했지만 배가 부르니까 물욕이 사라진 뒤 오래였다. 사실 산책이나 하다가 장을 보고 들어갈 요량으로 나온 외출이었다. 하지만 어제 봄비가 내려서인지 날이 쌀쌀했다. 등이 움츠러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90년대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다. DJ DOC, R.ef, 노이즈, 듀크 등등. 노이즈 노래는 처음 들었다. 노랫말이 예뻤다. <어제와 다른 오늘>, <상상속의 너>, <널 사랑하지 않아>.
예정대로 장을 봤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정말 요즘 입맛이 없다. 코카콜라 한 병과 양파, 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을 샀다. 미니 브라우니도 샀고 바디샴푸도 두 통이나 샀다. 피부가 예민해진 뒤로는 오로지 비누로만 씻고 있는데 요즘은... 그래도 다시 이런 요란한 화학제품을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이 생겨서 구입했다.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이기도 했고. 아직도 스킨 같은 걸 바르는 건 꿈도 못 꾸지만.
1. 슈크림빵
이마트 바로 옆의 파리바게트에 들렀다. 며칠 전에 먹었던 딸기 초코 머핀을 다시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품절. 엉엉. 흑흑. 아쉬운 김에 초콜릿 케이크를 샀다. 제품명은 초콜릿 케이크가 아니라 다른 이름인데, 내가 알 게 뭐람. 다른 빵은 뭐 없나, 싶어서 둘러 보는데, Wow. 언빌리버블. 슈크림빵 다섯 개를 2,800원에 판매 중이었다. 너무 비싸다.
슈크림빵!
─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지.
내가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인 '순수한 미취학 아동' 시절, 사촌 누나도 유친원생이던 그 시절. 나의 사촌 누나이신 '추튤립(가명)'께서는 나를 데리고 집 밖으로 놀러 나가는 것을 즐겼다. 우리 가족이 큰 고모네 집이 있는 울산시 우정동으로 놀러 간 그날, 누나는 나를 데리고 어른들 몰래 시내로 놀러 갔다, 고 한다.
갑자기 애 둘이 사라졌으니 어른들은 애들 찾으러 사방팔방 뛰어 다녔(다고 하)고, 아마도 경찰서에도 신고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누나와 나는 무사히 귀환을 했는데,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누나네 집으로 돌아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 아빠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아빠 뒤편에는 카센터가 보였다. 나는, 내 오른손은 누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누나는 우리 아빠를 불렀다. 너무나 해맑고 명랑한 목소리로. 추튤립 양은 정말 간이 큰 여자였다. 우리가 혼이 났는지 나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혼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슈크림빵이랑 무슨 상관인데, 이게.
내가 초등학생 때 울산 추튤립 씨의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그날은 여름의 막바지, 여름방학의 끄트머리 일요일, 그러니까 진짜 여름이 끝장나는 날이었다. 누나가 나를 데리고 동네 빵집에 갔다. 큰 고모 몰래. 큰 고모가 나가지 마라고 했는데, 또 누나는 나를 데리고 밖에 나간 것이다. 심지어 누나의 동생들마저 따돌리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아마 사춘기를 겪는 추튤립의 소소한 일탈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나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으니까 그때가 사춘기의 도입이었을 것 같다.
여름인데도 해가 진 뒤면 엄청 늦은 시각이었을 텐데, 누나는 나를 데리고 빵집에 갔다. 빵집도 폐점할 시간이었는지 빵을 헐값에 떨이로 팔고 있었다. 슈크림빵 한 알이 무려 100원! 우리는 열 개나 사 먹었다. 아마도 내가 가진 천 원으로 빵값을 지불했지 않았을까... 삥 뜯긴 건 아니고.
슈크림빵! 하면 떠오르는 일화는 이게 일 번이다.
절대 일 번.
2. 바게트빵
우리 엄마가 보험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엄마의 일은 회사를 퇴근한 저녁부터 본격적인 전투였다. 서부리 처음부터 동부리 끝쪽까지 걸어서 가맹점을 들러 일수금을 걷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꼭 나를 데리고 수금을 했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런데 이건 좋은 버릇인 것 같다. 나는 요즘도 거스름돈을 받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하는데,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찐따 같지만. 아무튼 그렇게 기나긴 엄마의 생업이 마무리를 지으면 우리 두 사람은 버스터미널 옆 블록에 위치한 빵집에서 바게트빵을 샀다. 매일 빵을 산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날 빵집에서 수금을 끝마치면 겸사겸사 빵도 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는 바게트빵을 좋아했다. 우리 동네 바게트빵은 아니고, 엄마가 울산의 극장(지금은 이름을 바꾼) 근처의 유명한 빵집(아마도 '하얀 풍차')에서 파는 바게트빵을 특히 좋아하셨다. 뭐, 빵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놀라운 TV 서프라이즈 톤으로) 엄마의 낭만이 깃든 빵집이 아니었을까? 퇴근한 뒤에 옷도 갈아입고 씻기도 다 씻고 청소도 조금 한 뒤 엄마랑 단 둘이서 맥심 커피에 바게트빵을 찍어 먹는 게 그렇게 좋았다. 수퍼마켓에서 보험금 수금이 끝나면 거기서는 과자 에이스나 빠다코코낫을 샀다. 그것들도 커피에 찍어 먹었다.
나는 그런 자투리 기억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없다면, 없었다면 너무 삶이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거창하고 위대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에는 보잘것없을지 모를 작디작은 소꿉놀이 같은 일들이 삶을 지탱하는 행복이라는 배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3. 널 사랑하지 않아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를 걷다가 만약, (진짜 만약에) 어제까지 서로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주고 받던 상대방으로부터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응."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쌀쌀해서 그런가. "이제 내 집에서 나가."라거나 "내 방에서 나가."와 비슷한 말의 울림인 것 같다. "널 사랑하지 않아.". 그렇다면 내쫓길 수밖에 없겠지. 내 것이 아니니까.
4. 몬탁 프로젝트
몬탁(Montauk) 해변에서 발견된 '몬탁 괴물'에 대한 영상을 보고, '몬탁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필라델피아 실험'을 알게 되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알게 되었다. <신세계에서>를 보고 있다. 딸기를 먹고 있다. 설탕에 찍어서.
2020년 3월 27일 금요일
꿈속 대화
2020.3.27 금요일
꿈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라고 하기보다는 김태형이 내게 무언가를 물어 보았고 내가 거기에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마지막 질문의 답은 조금 길었는데, 꿈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잠꼬대로 내가 입을 통해서 실제로 말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 사실을 잠을 자는 동안에 내가 인식했다. 꿈을 꾸는 동안인데도 '어어? 내가 말을 하고 있잖아? 일어날까? 목마르다... 에이 더 자자.' 이런 생각하다가 계속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른 꿈에서 웬 초능력을 가진 여자애와 그 아이를 뒤쫓는 악당 구준엽이 등장했다. 약간 디스토피아물이었는데... 누가 진짜 악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초능력과 신통력이 뒤섞인 꿈이었다. 가족의 사진 앨범도 중요한 아이템이었는데... 그리고 꿈이 조금 잔혹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희고 붉은.
2020년 3월 22일 일요일
당연
2020.3.23 월요일
🏡🚶♂️
올해 1월부터 태형이의 팬서비스가 늘어서 좋다.
너무너무너무너무 기쁘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서 자주 찾아와 주는 그의 다정함에 익숙해지고 무뎌질까 봐 팬으로서는 겁이 난다.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늘 고맙게 생각해야지.
🎁
(효도를 그렇게 해 봐) (죄송...)
2020년 3월 21일 토요일
Strawberry Milk
🍓🥛
딸기우유는 반칙이다
유리컵에 붓는 순간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유리컵에 그려진 검은 고양이가 춤춘다
😻😽😸😼😺
집앞 파리바게트에 들러서 오랜만에 빵을 샀다.
이것저것 샀는데... 방금 딸기가 올려진 초코 머핀을 하나 먹었다. 딸기 반 토막이 초코 머핀 머리에 놓여져 있는 초심플하고도 심심한 머핀이었다. 그런데 두 입째 베어 물자 머핀 속에서 분홍색 딸기 크림이 뷰루룻(!). 생크림인지 슈크림인지 알 수 없는 식감의 크림이 넘넘 맛있었다.
거짓말이다
2020.3.22 일요일
기억은 거짓말을 하는구나.
내가 못 본 게 아니었어.
다른 애가 도시락을 엎어서 반찬을 교실 바닥에 떨구고 발로 짓이겨서 먹으라고 강제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바닥에 처박은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는 아마 그게 내가 상상한 광경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어서 뇌가 거짓말을 했나 봐.
놀란 나는 그 자리를 떴고...
비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