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8 토요일
0. 왕돈가스
왕돈가스를 먹었다. 이상하게 소화가 더디었다. 윗배가 아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와플을 사 갈까, 했지만 배가 부르니까 물욕이 사라진 뒤 오래였다. 사실 산책이나 하다가 장을 보고 들어갈 요량으로 나온 외출이었다. 하지만 어제 봄비가 내려서인지 날이 쌀쌀했다. 등이 움츠러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90년대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다. DJ DOC, R.ef, 노이즈, 듀크 등등. 노이즈 노래는 처음 들었다. 노랫말이 예뻤다. <어제와 다른 오늘>, <상상속의 너>, <널 사랑하지 않아>.
예정대로 장을 봤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정말 요즘 입맛이 없다. 코카콜라 한 병과 양파, 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을 샀다. 미니 브라우니도 샀고 바디샴푸도 두 통이나 샀다. 피부가 예민해진 뒤로는 오로지 비누로만 씻고 있는데 요즘은... 그래도 다시 이런 요란한 화학제품을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이 생겨서 구입했다.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이기도 했고. 아직도 스킨 같은 걸 바르는 건 꿈도 못 꾸지만.
1. 슈크림빵
이마트 바로 옆의 파리바게트에 들렀다. 며칠 전에 먹었던 딸기 초코 머핀을 다시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품절. 엉엉. 흑흑. 아쉬운 김에 초콜릿 케이크를 샀다. 제품명은 초콜릿 케이크가 아니라 다른 이름인데, 내가 알 게 뭐람. 다른 빵은 뭐 없나, 싶어서 둘러 보는데, Wow. 언빌리버블. 슈크림빵 다섯 개를 2,800원에 판매 중이었다. 너무 비싸다.
슈크림빵!
─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지.
내가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인 '순수한 미취학 아동' 시절, 사촌 누나도 유친원생이던 그 시절. 나의 사촌 누나이신 '추튤립(가명)'께서는 나를 데리고 집 밖으로 놀러 나가는 것을 즐겼다. 우리 가족이 큰 고모네 집이 있는 울산시 우정동으로 놀러 간 그날, 누나는 나를 데리고 어른들 몰래 시내로 놀러 갔다, 고 한다.
갑자기 애 둘이 사라졌으니 어른들은 애들 찾으러 사방팔방 뛰어 다녔(다고 하)고, 아마도 경찰서에도 신고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누나와 나는 무사히 귀환을 했는데,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누나네 집으로 돌아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 아빠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아빠 뒤편에는 카센터가 보였다. 나는, 내 오른손은 누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누나는 우리 아빠를 불렀다. 너무나 해맑고 명랑한 목소리로. 추튤립 양은 정말 간이 큰 여자였다. 우리가 혼이 났는지 나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혼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슈크림빵이랑 무슨 상관인데, 이게.
내가 초등학생 때 울산 추튤립 씨의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그날은 여름의 막바지, 여름방학의 끄트머리 일요일, 그러니까 진짜 여름이 끝장나는 날이었다. 누나가 나를 데리고 동네 빵집에 갔다. 큰 고모 몰래. 큰 고모가 나가지 마라고 했는데, 또 누나는 나를 데리고 밖에 나간 것이다. 심지어 누나의 동생들마저 따돌리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아마 사춘기를 겪는 추튤립의 소소한 일탈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나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으니까 그때가 사춘기의 도입이었을 것 같다.
여름인데도 해가 진 뒤면 엄청 늦은 시각이었을 텐데, 누나는 나를 데리고 빵집에 갔다. 빵집도 폐점할 시간이었는지 빵을 헐값에 떨이로 팔고 있었다. 슈크림빵 한 알이 무려 100원! 우리는 열 개나 사 먹었다. 아마도 내가 가진 천 원으로 빵값을 지불했지 않았을까... 삥 뜯긴 건 아니고.
슈크림빵! 하면 떠오르는 일화는 이게 일 번이다.
절대 일 번.
2. 바게트빵
우리 엄마가 보험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엄마의 일은 회사를 퇴근한 저녁부터 본격적인 전투였다. 서부리 처음부터 동부리 끝쪽까지 걸어서 가맹점을 들러 일수금을 걷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꼭 나를 데리고 수금을 했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런데 이건 좋은 버릇인 것 같다. 나는 요즘도 거스름돈을 받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하는데,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찐따 같지만. 아무튼 그렇게 기나긴 엄마의 생업이 마무리를 지으면 우리 두 사람은 버스터미널 옆 블록에 위치한 빵집에서 바게트빵을 샀다. 매일 빵을 산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날 빵집에서 수금을 끝마치면 겸사겸사 빵도 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는 바게트빵을 좋아했다. 우리 동네 바게트빵은 아니고, 엄마가 울산의 극장(지금은 이름을 바꾼) 근처의 유명한 빵집(아마도 '하얀 풍차')에서 파는 바게트빵을 특히 좋아하셨다. 뭐, 빵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놀라운 TV 서프라이즈 톤으로) 엄마의 낭만이 깃든 빵집이 아니었을까? 퇴근한 뒤에 옷도 갈아입고 씻기도 다 씻고 청소도 조금 한 뒤 엄마랑 단 둘이서 맥심 커피에 바게트빵을 찍어 먹는 게 그렇게 좋았다. 수퍼마켓에서 보험금 수금이 끝나면 거기서는 과자 에이스나 빠다코코낫을 샀다. 그것들도 커피에 찍어 먹었다.
나는 그런 자투리 기억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없다면, 없었다면 너무 삶이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거창하고 위대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에는 보잘것없을지 모를 작디작은 소꿉놀이 같은 일들이 삶을 지탱하는 행복이라는 배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3. 널 사랑하지 않아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를 걷다가 만약, (진짜 만약에) 어제까지 서로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주고 받던 상대방으로부터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응."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쌀쌀해서 그런가. "이제 내 집에서 나가."라거나 "내 방에서 나가."와 비슷한 말의 울림인 것 같다. "널 사랑하지 않아.". 그렇다면 내쫓길 수밖에 없겠지. 내 것이 아니니까.
4. 몬탁 프로젝트
몬탁(Montauk) 해변에서 발견된 '몬탁 괴물'에 대한 영상을 보고, '몬탁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필라델피아 실험'을 알게 되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알게 되었다. <신세계에서>를 보고 있다. 딸기를 먹고 있다. 설탕에 찍어서.